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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의 가을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취미/감상문_책 2023. 8. 20. 21:43
📗 과거 언젠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한 번의 포기가 있었지만 다 다 읽었고, 읽은 것이 후회되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던 중 민음사 유튜브에 저자의 책 중 재번역 및 출간된 책이 있다고 하여 읽게 되었다.
📗 책 표지에 ‘버지니아 울프 - 댈러웨이 부인의 문학적 기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나는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고 시작했어야 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댈러웨이 부인이 합쳐진다? 나는 그 부분을 알아채고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무식하다고 이 책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이 책은 마침표가 참 귀하고 쉼표가 난무한다. 긴 흐름의 문장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십상이고 잠깐 흐름을 놓쳤다가는 두어 장 뒤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주어도 대명사를 많이 쓰고, 장군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백년동안의 고독과 같은 기이한 일 또한 너무 평이하게 서술한다. 고백하건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부분도 많다. 또한 남미 독재정권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책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다 읽었을까. 무슨 매력이 있길래 길고도 험난한 독서를 마쳤을까.
📗 작가가 알리고픈 남미 독재정권의 현실을 마치 체험한 것처럼 읽은 책이었다. 그러니까, 이 국가의 국민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무언가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있는 듯 없는 듯, 실체는 없고 결과는 있는, 그런 상태로 책을 읽었다. 당시 남미 독재정권의 일부를 느껴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 독재자인 ‘족장’과, 그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뜨거운 격류’가 흐르는 그의 전성기 시절과, ‘족장의 가을’이 오는 그의 후반기 시절을 여러 시선을 옮겨 다니며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정권을 세우고 유지하고 반역자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정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힘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가 사라지고 외세가 들어오면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시간도 태양도 명령 하나로 바꿀 수 있는 족장이었지만, 종래에는 자택에 유폐되어 라디오 단막극의 결과 정도나 바꿀 수 있는 허수아비로 전락한다.
📗 독재자의 시점에서 길고 긴 권력과 명예의 시간이었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그가 결국 얻어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루할 정도로 긴 수명, 어머니의 성모 추대, 과거의 사랑과 유사한 여인과의 사랑, 그리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명예와 자존감. 그러나 그는 이것을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주변을 끝없이 의심하며 복잡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자신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연극인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되어도 죽음과 사랑은 어찌할 수 없다. 본질을 잊고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추종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 않을까.
📗 국민들 또한 초반에는 족장에게 휘둘리며 이리저리 고생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런 족장에게 적응한다. 마치 태풍이나 지진을 대하듯 말이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몰아칠 때는 대비해도 피할 수 없는 재난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재난이 없는 삶 또한 상상하지 못하며 재난을 없앨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민중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희생자들처럼 보였다.
📗 족장도 국민들도 국가가 정치 사회적으로 성장해 가는 중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족장이 독재자 역할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내었고, 마침 그 시기가 서구 자본주의 세력과 겹치면서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뿐.
📗 지금까지의 독서 방식을 뒤흔드는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문장과 독서를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취미 > 감상문_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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