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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의 높은 산 - 얀 마텔
    취미/감상문_책 2023. 4. 11. 21:10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2023. 3. 20. ~ 4. 9.(20D)
    종이책으로 읽음
    이별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들

    _얀 마텔의 신간이다. 얀 마텔의 <파이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기에 새로운 책에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_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있다. 세 개로 나누어진 각 장은 몇 개의 키워드로 내용이 이어진다. '이곳이 집이다', 침팬지, 죽음 등의 키워드가 각 장에서 공유된다. 그 키워드들이 각 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이어질 듯 말 듯 한 주제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각 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다.

     

    _1장 '집을 잃다' 에서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신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십자고상을 찾아 나서는 토마스가 나온다. 신을 증오하고 거부하는 마음으로 뒤로 걷는 그는, 일상을 포기하면서 까지 복수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불행만을 생각하며 타인의 시선과 고통에 둔감해져 갔고, 그 둔감이 무관심이 될 때쯤 사고를 일으킨다. 자신이 그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를 잃은 것처럼, 그 마을 사람들도 그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하고 아이를 잃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며 행위한 그는, 결국 자신이 증오한 신과 같은 가해자가 된 것이다. 

    _2장 '집으로' 에서는 얀 마텔 식의 판타지 묘사가 돋보이는 장이었다. 어느샌가 정신 차리고 보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활자로 펼쳐져 있다. 남편과 아이를 모두 읽은 노모는 남편의 시체를 부검하며 그의 인생을 하나씩 읽어나간다. 죽은 남편의 몸에는 토사물과 진흙이 나왔지만, 피리와 장난감 수레도 나온다. 남편의 인생을 하나씩 훑어 나가며 그 슬픔을 담담하게 이겨내고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남은 침팬지와 갈색 새끼 곰을 본 그녀는 그들과 남편 몸속에 들어가는 선택을 한다. 새끼곰과 침팬지만을 남기고 다 덜어낸 죽은 남편의 몸에는 겨우 노모가 들어갈 자리만 있었을 뿐이다. 겨우 그 좁은 자리였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지 않았을까. 그 모든 일련의 모습들에 그저 노모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슬픔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_3장 '집'에서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찾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침팬지 '오도'를 충동적으로 입양하고 자신의 본적지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라로 떠난다. 그는 투이젤라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고뇌한다. 새로운 존재, 새로운 선택, 새로운 시작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후회하고 절망한다. 다행히도 그의 선택은 새로운 삶을 펼쳐나가는 시발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 끝이 어떠할 지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선택을 끝없이 두려워하고 후회하는 우리의 삶 말이다.

     

    _세 장의 이야기는 모두 소중한 사람의 부재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복수를 위해 움직이거나, 깨달은 바를 신상을 남긴다. 한 밤중에 죽은 아내를 불러내는 자도 있었고, 죽은 자와 함께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에 대응했고 그 각자의 방식은 그들 자신에게는 합리적이었으리. 그저 그걸 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지.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별을 대하는 사람일까.

     

    _읽기가 쉽지만은 않다. 옴니버스 식 진행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이야기의 큰 흐름을 보며 읽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 하고 앞 장의 내용을 찾아보게 된다. 그때 세세하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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